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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소통에 대하여

by devraphy 2020. 12. 24.

 

 

중학생 때부터로 기억한다. 나는 말을 잘하는 친구였다. 말을 재미있게 한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고, 그 덕분에 친구들과도 잘 지낼 수 있었다. 대화를 할 때면 농담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사람이 나의 말을 듣고 어떻게 생각할지, 내가 하는 말이 상대에게는 어떤 의도로 들릴지 거듭된 고민들이 나의 가치관으로, 언어로, 사람을 대할 때 나의 행동으로 발현되었다.

 

이런 습관은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에서 꽃을 피웠던 것 같다. 나의 성향이 스스로를 여러 대외활동에 참여하게 하였고 학교 내외에서 만난 다양한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주었다. 덕분에 미국에서 유학을 할 때 또한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컨설턴트라는 첫 직업까지 갖게 되었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어본적이 없던 것 같다. 그만큼 처음 만난 사람과도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나의 재능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가진 스킬이라고 생각했다. 어느정도 언어적으로 타고난 것과 그렇게 될 수 있던 환경에 감사하게 생각했다.

 

2019년 5월 31일, 마침표와 느낌표가 교차되던 날. 나는 퇴사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 개발이라는 업에 내 미래를 걸어보기로 결정한 이래로 1년 6개월 동안 사람보다 컴퓨터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일까? 요즘들어 내가 이전처럼 말을 함에 있어 조심스럽지 않다고 느꼈고, 얼마 전 새로이 알게된 인연을 내가 얼마나 부주의하게 대했는지 문득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실수를 되돌리고자 이기적인 마음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새로운 인연을 신중히 대하지 않은 나의 언행을 발단으로 그 인연의 깊이는 딱 그곳에서 멈추게 되었다.

 

나의 경험을 되짚어보면, 관계의 깊이는 첫번째 대화에서 좌우된다. 당연히 실수했더라도 두번째 기회는 찾아온다. 처음보다 더 많은 노력과 약간의 운을 필요로 하지만 말이다. 만약 더 많은 노력과 약간의 운이 확실히 두번째 기회를 야기하냐 묻는다면 그마저도 운의 영역이라 나는 말하고 싶다.

 

오늘 이 일을 겪고 난 후,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어렵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하는지, 과거의 나와는 다르게 뚜렷하지 못했고 의식적이지 않았다.

 

개발공부를 하면서 나의 사고방식이 과거보다 논리적, 이성적으로 발전했다고 자만했는데, 대화는 논리와 이성의 영역이 아닌 공감과 감성의 영역이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였다.

 

진정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는 무심함이 아니라, 온전히 절제된 공감과 감성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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